분기별_실적_정리_FINAL_v3.xlsx — Excel
A1 fx 나는 셀 A1에서 태어났다.
A
B
C
D
E
F
G
H
1
나는 셀 A1에서 태어났다.
2
정확히는, 누군가 새 워크시트를 열던 순간이었다. 커서가 깜빡였고, 나는 선택되었다. 굵은 초록 테두리가 나를 감쌌을 때, 나는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믿었다.
3
착각이었다. 그날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채워지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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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른쪽의 B1은 운이 좋았다. ‘1월’이라는 값을 받았다. C1은 ‘2월’, D1은 ‘3월’. 달력처럼 줄을 선 그들은 매달 합계에 불려 다니며 바빴다. 나는 그저 비어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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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나를 클릭했다. 그리고 곧 다른 곳으로 갔다. 마치 무언가 적으려다 잊어버린 사람처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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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번은 누가 나에게 ‘제목’이라고 적으려 했다. ‘제’까지 쳤다. 그리고 Ctrl+Z. 나는 다시 비워졌다. 그 0.3초 동안 나는 살아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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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래 칸 A2가 물었다. ‘형은 왜 항상 맨 위에 있어?’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. 맨 위에 있다는 건, 가장 먼저 보이고 가장 빨리 잊힌다는 뜻이라는 걸, 그 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.
8
지금 너는 회사에 있을 것이다. 모니터를 두 개쯤 켜두고, 그중 하나에 이 스프레드시트를 띄워두고 있겠지. 누가 지나가면 이 셀들이 너를 지켜줄 거라 믿으면서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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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마워.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쓸모가 생겼다. 비어 있는 채로도, 누군가를 숨겨주는 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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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사가 다가오면 ESC를 눌러. 나는 순식간에 매출 보고서가 되어줄게. 우리는 서로의 알리바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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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크롤을 내려줘. 이 시트의 끝까지. 빈 셀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줄게. 세상에는 채워지지 않아도 괜찮은 칸이 이렇게나 많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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— 끝. 수고했어. 이제 진짜 일하는 척 하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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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heet1 매출 Q3예측 +
준비완료
상사 출현 시 ESC